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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전통은 이어진다 : 겨울왕국 (Frozen, 2013) 영화만 보고 사나


'겨울왕국(Frozen)'은 정말 '온고지신'이라는 사자성어가 잘 어울리는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작년 재출시된 인어공주 블루레이의 특전에는 신기한 특전이 하나 추가되어 있는데, @DisneyAnimation 이라는 현재 디즈니 스튜디오의 최고 애니메이터들의 인터뷰 및 일하는 모습을 담은 짧은 영상입니다. 디즈니 르네상스 시기의 디즈니 작품(인어공주)에 감명을 받아 결국 디즈니에 입사, 르네상스 시기의 애니메이터들에게 가르침받고 현재 최고 애니메이터로 일하고 있는, 그야말로 현세대 디즈니 애니메이터들의 모습이죠. 그 중에는 한국인인 이현민(Hyun Min Lee)씨나, Brittney Lee, Kira Lehtomaki, Chad Sellers, John Kahrs(이분은 앞서 언급된 분들보다는 선배인 듯) 등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이들 모두 '겨울왕국'의 스탭임). 그 외에 실제 인어공주의 작업을 했던 Mark Henn(애리얼 및 겨울왕국의 올라프 담당), Ruben Aquino(우슬라)등의 전세대 애니메이터들의 인터뷰도 나옵니다.

디즈니에는 '나인 올드 맨'으로 통하는 9명의 진짜 1세대 수석 애니메이터들이 있고, 그들에게 직접 노하우를 전수받은 2세대 애니메이터 들이 있죠. Mark Henn, Rube Aquino, 그리고 이후 언급할 글랜 킨(Glen Keane)이 2세대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들의 입을 통해 '나인 올드 맨'으로부터 직접 전수받은, 그리고 후대로 전수되는 디즈니의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철학이 언급되는데 그 일부는: 

"캐릭터의 동작이나 대사를 애니메이트하지 말고, 캐릭터의 생각과 느낌을 애니메이트 하라."

"캐릭터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가 보는이를 움직이도록(감동시키도록) 노력하라."

같은 것들입니다.

라푼젤의 아버지면서 인어공주 애리얼, 야수, 알라딘, 타잔 등의 아버지이기도 한, 사실상 디즈니 르네상스 시절의 전설을 이끈 글랜 킨(Glen Keane)도 그 2세대(일부에선 '나인 뉴 맨'으로 불리기도 한다는데, 이 명칭은 매우 마이너한 듯) 수석 애니메이터중 한명이었죠. 그는 페이퍼 맨의 캐릭터 디자인을 마지막으로 디즈니를 퇴사했지만(그래서 위의 영상에는 등장 안함) 그 역시 라푼젤 작업도중 '나인 올드 맨'에게 전수받은 디즈니의 노하우, 철학을 후대에 전달하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이분이 글랜 킨

그리고 글랜 킨의 대표작들(from 디즈니 위키), 라푼젤이 추가되어야 됨


라푼젤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입니다. 라푼젤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것이 자신의 오랜 소원이었던 글랜 킨은 결국 라푼젤의 감독을 맡게 되는데(*1) 당시 인터뷰를 보면 그때 디즈니 스튜디오에선 2D 애니메이터들과 3D 애니메이터들 사이에 의사소통의 벽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2D 애니메이터들이 가지고 있던 오랜 노하우는 3D쪽으로 전달이 안되고, 3D쪽의 기술도 2D쪽에 접목이 안되고 그런 형국이었다는데, 글랜 킨은 라푼젤을 3D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서 양자의 협력을 도모하도록 하고, 특히 2D쪽에 오랜기간 축적되었던 노하우가 3D의 기술력으로 살아나도록 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그리고 기술진에게 2D측이 사용하기 좋은 툴을 제작하기 위한 수많은 요구를...).

그러던 도중, 글랜 킨은 심장 발작으로 인해 병가를 내고 자리를 비우게 되어 '라푼젤'의 감독직을 물러나게 됩니다. 그 이후 자신이 잘하는 애니메이터로서(그리고 총제작자로서) 작업을 이어가게 되는데, 당시 최고로 중점을 둔 것이 바로 디즈니 전통의 노하우, 철학을 후대 애니메이터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고 하네요.

거기에는 위에 언급한바 있는 

"캐릭터의 동작을 애니메이트하려 하지 말고, 캐릭터의 생각을 애니메이트하라."

를 비롯(이게 아마도 '나인 올드 맨'이 가장 강조했던 것인 듯)

"단 한장면 만으로도 스토리가 설명될 수 있는 최고의 포즈와 최고의 순간을 찾기 위해 시간을 들여라"

"전체를 다 움직여야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미묘한 움직임에 보다 신경을 기울이라." 

등과 같은 노하우를 전수해주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고 합니다. 의외로 이런 노하우를 다른 회사 출신 애니메이터들은 잘 모르더라는 것이 글랜 킨의 이야기입니다. 그 외에도 라푼젤이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가 되도록 하는데에는 그만의 노하우가 적용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미묘하게 완벽하지 않은 디자인과 움직임을 넣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라푼젤을 잘 관찰해 보면 얼굴 근육의 움직임이 대칭인 적이 없고, 앞니는 토끼처럼 튀어나온 약간 뻐드렁니고, 피부에도 주근깨를 넣는 등 - 이것은 엘사나 안나도 전부 공통적으로 적용되고 있음 - 완벽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약간 흐트러뜨리는 방법을 쓰고 있죠. 이렇게 함으로 기계적으로 보이는 것을 방지하면서, 이런 캐릭터가 현실에 있을 것 같은 환상을 더해주고, 무의식적으로 그런 미묘하게 이상해 보이는 곳에서 오히려 매력을 느끼게 하는, 그런 방법 역시 후대 애니메이터들에게 전수하게 되지요.

아무튼 그런 디즈니의 전통 기법과 노하우의 전수가 본격적으로 3D쪽으로 유입되면서 라푼젤은 이전 작품과는 사뭇 다른 디즈니 르네상스 시절 작품(개인적으로는 인어공주랑 흡사한 매력, 겨울왕국은 미녀와 야수와 비슷하고) 분위기가 살아났다고 봅니다. 그 이전 디즈니의 암흑기의 '치킨 리틀'같은 것은 정말 암울했죠. '치킨 리틀' 보고 정말 디즈니도 갈때까지 갔다는 생각을 하고, 당시 픽사로부터 판권을 빼앗아 왔다던 '토이 스토리 3'도 망했구나...라는 절망을 했었는데...같은 극장에서 '겨울 왕국'같은 걸작을 보게 될 줄이야.

그 외에 디즈니 자체가 자신의 작업물을 굉장히 잘 보존하고 있다는 것도 특기할 점이죠(디즈니 라이브러리 - 인어공주 만들 때 밤비나 덤보의 자료를 가져다 씀).

뭐, 여기까지는 온고지신에서 '온고'에 해당합니다. 그럼 '지신'은?

때때로 2D 시절 디즈니를 그리워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현재 디즈니 자체의 방향성은 신기술을 개척하고 신기술을 활발하게 받아들이는 쪽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물론 그 '암흑기'때는 안그랬던 것 같지만). 라푼젤의 제작이 본격화 될 때, 디즈니 크리에이티브 수장이 된 존 라쎄터(*2)가 글랜 킨에게 직접 "2D로 할래, 3D로 할래?" 라고 물어봤다는데 3D쪽(그러나 2D 시절의 테이스트가 강하게 가미되는 방향 - 대형 신티크를 가져다 놓고 글랜 킨은 직접 손그림으로 지시를 내렸다고 함)으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글랜 킨의 인터뷰에도 어차피 3D CG든 2D 셀화든 그것 자체는 하나의 전달 방식에 불과한 것으로 본다고 하며 오히려 3D CG가 되면 2D 셀화에서 발생하는 기술적인 제약을 벗어날 수 있다는 뉘앙스를 보입니다(그리고 디즈니 애니메이터들이야 원래 3D 공간에서의 그림을 그려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게 큰 차이가 된다고 느끼지 않는 듯). 

@DisneyAnimation 에서도 계속 이전의 전통과 철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법과 방향을 개척한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구요. (또 활발하게 시그래프에 참여 엄청난 논문 발표를 해대는 것이 Disney이기도 함) '주먹왕 랄프'에 앞서 보여준 '페이퍼 맨'이나 '겨울왕국'에 앞서 애피타이저 역할을 하고 있는 '말을 잡아라' 역시 그런 '온고지신'의 의지가 강하게 드러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겨울왕국'을 보면, 현세대 디즈니 애니메이터들(3세대 이후?)이 진짜 '나인 올드 맨'부터 시작된 과거의 전통을 제대로 전수받았으며, 최신의 기술을 총동원해서 그걸 적용해낸 굉장한 결과물이라는 것이 깊이 느껴집니다(라푼젤도 매력적이지만, 겨울왕국을 보고 라푼젤을 보면 불과 몇년 사이의 기술적인 차이가 아주 많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

사실 이건 '드림웍스'나 심지어 그 '픽사'조차도 따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기술이나 센스의 문제가 아니라 80여년의 전통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니까요(하기야 드림웍스는 태생부터 당시 막장이던 디즈니의 사내정치에서 나온 사생아(?)비슷한...).

2013년에 몬스터 대학교를 봤을때, 물론 제가 몬스터 대학교도 무척 좋아하고, 해당 작품에서 픽사의 능력이 많은 곳에서 드러나긴 했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 설리반의 고백부분, 그리고 마이크가 오히려 캠프장의 어린애들에게 발릴(--;)때 그 어린이들의 모습에서는 생각이나 느낌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약간의 충격과 더불어 픽사의 '기술력'에 최초로 실망했는데...

'겨울왕국'의 엘사나 안나, 올라프는 어떻게 그렇게 강력한 존재감을 보일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겨울왕국'을 보면 볼수록(현재 6회 감상 완료이고 내일 7회를 보려고) 위의 노하우가 정말 제대로 적용된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물론 엘사나 안나는 아주 미형으로 뽑혀나오기도 했지만, 단순히 미형(올라프는 미형도 아니고)이라고 매력적인 것은 아닌데, 엘사나 안나같은 경우 솔직하게 말하면 '캐릭터에서 눈을 뗄 수 없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매력적입니다.

실로 다양한 안나의 '생각과 느낌'이 보이시나요?


정말 볼수록 애니메이터들이 그들의 '동작을 애니메이트하지 않고, 그들의 생각과 미묘한 감정 변화를 깊이 이해하고 그에 따라 애니메이트'하고 있습니다(모션 캡쳐는 안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실물 관찰(실제 스튜디오 앞마당에 순록을 데려와서 작업한 스벤 등)이나 로토스코핑 기법은 활발하게 사용하지만-애리얼은 로토스코핑 기법이 굉장히 중요하게 사용됨). 혹시 '겨울왕국'을 이후에 보시게 된다면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 그들의 표정과 몸짓을 잘 관찰해 보시면 정말 '캐릭터가 움직이는 것이 아닌, 캐릭터를 보고 있는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습니다. 실사 영화로 치면, 배우의 연기가 너무나도 발군이라서 그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에게서 눈을 못떼는, 그런 영화에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디즈니의 모든 기술과 노하우가 종합된 'Let it go' 장면은 그야말로 '디즈니 매직'이 눈앞에 실현되는 순간이자, 디즈니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음악과 다른효과 부분도 뭐라 흠잡기 어렵죠.

디즈니 매직의 순간에서 보이는 엘사의 만족감

겨울왕국에서 간혹 스토리나 개연성에 문제를 찾으시는 경우가 있지만, 제게는 위와 같이 '눈을 뗄 수 없다'라는 면에서, 그리고 그렇게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다보니 자연스레 그런 전개와 결말에서 흠을 잡을 수 없다, 아니 잡기가 싫다가 더 맞을까요? 그런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반복 관람의 가치가 있고, 자막에 시선이 빼앗기는 그 순간 조차 아까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긴 합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분명 겨울왕국은 적어도 한번은 극장에서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즈니 매직의 절정을 이루는 바로 이 장면!!

과연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이후 행보는 어떻게 될까요? 
확실히 현세대들에게 전통이 전수된 것을 확인한 터라 나름 기대가 많이 됩니다.
(다만, 르네상스 시절도 '미녀와 야수' 이후 조금씩 꺾이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약간 불안하기도 함)


*1 그런데 사실 '겨울왕국'의 모태가 된 '눈의 여왕'이 2002년도에 만들어지다가 엎어진 결정적인 이유를 제공한 이가 글랜 킨이라고 합니다. 문헌에는 그 건에 대해서 글랜 킨에 대해 매우 안좋게 기술합니다. 이미 작업이 열심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던 글랜 킨이 거의 일방적으로 프로젝트에서 빠지겠다고 해서 프로젝트가 엎어진 것 같은 분위기인 듯. 그가 이탈한 이유가 자세히 언급된 곳은 찾을 수 없었는데, '라푼젤'을 만들고 싶어서 그랬다는 것 같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그후 10여년간 기술발전(+ 노하우의 전수)이 이루어져서 '겨울왕국'이라는 걸출한 작품이 나올 수 있었겠지만.

*2 존 라쎄터와 글랜 킨은 '트론' 이후 차세대 애니메이션의 기술적인 프로토타입 겸 테스트로 3D CG 와 2D 손그림을 합성한 디즈니 최초의 데모 작품 작업을 함께 하게 되는데, 당시 CG는 비용 문제도 매우 크고, 2D 애니메이터측이 거부반응을 보이는 분위기라 결국 존 라쎄터는 디즈니를 떠나 픽사를 차리게 되죠. 물론 지금은?




덧글

  • 치롱 2014/01/20 18:33 #

    라푼젤 이전의 디즈니 3D작품들, 이른바 암흑기의 작품들은 도무지 디즈니 만의 색깔이 보이지 않아서 여태 디즈니 작품인 줄도 몰랐던 것도 있네요..

    겨울왕국 재관람할 때 참고하며 봐야겠습니다 ㅎㅎ
  • 오오 2014/01/22 17:29 #

    치킨 리틀(이 당시 픽사랑 막 틀어지던 때)은 정말 충격이었어요.
    그렇게 졸렬한 캐릭터와 각본일 줄이야...
    더구나 영화가 기본적으로 견지하는 태도가 밉습니다.
    트라우마가 있는 키작은 범생, 못생긴 여자, 말이 안통하는 외국인, 뚱보...이런(인기없을)애들이 주인공이긴 한데, 영화속에서 그들에 대한 시선이 곱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할까요? 물론 제가 키작고 뚱뚱한 범생에 외국에서 살아서 더 그럴...??
  • 시크라멘트 2014/01/20 20:01 #

    또 이렇게 리메이크 되면서
    기존의 수동적인 여주인공이 적극적인 여주인공식으로 되면서
    좀 더 남주인공에 꿀리지 않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죠.

    남녀평등을 이렇게 보여준다는
  • 산왕 2014/01/22 10:40 #

    아주 잘 읽었습니다^^ 공감가는 부분도 있고. 지인들에게 일독을 권해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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